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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스런 제주

검은베레 53명 용사의 생명 앗아간 봉황새 작전

검은베레의 특전사 용사 47명과 공군 용사 6명의 고귀한 생명을 잃은 곳

 

美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로...자칫 잊혀 지나칠 것 같은 호국보훈의 달 6월이네요..

꽃 같은 젊음이 억울하게 희생 됐는데도 영혼조차 위로 받지 못하고 있는 사건 하나를 소개합니다.    

임무수행중 희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국가의 냉대를 받아야 했던..... 

일명'봉황새작전' ....53명의 젊은 영혼이 머무는 곳....

한라산 관음사 코스 등반로 입구에서 4.1Km, 해발1,120M지점에 가면 아래사진의 원점비 표시판을 볼 수 있습니다.  

    ▲ 현장입구 표시판                                                                     ▲입구 표시판옆에 세워진 추모비

 

  지금부터 26년전인 1982년2월5일 특전사 대원 47명과 공군6명등 53명을 태운 C123수송기가 기상악화로 위 지점에 추락하여 전원 사망했습니다. 이들은 제주지방 연두순시와 제주공항 준공식에 참석하는 전두환 대통령을 경호하기 위하여 미리 제주도로 투입되는 대원들이었습니다.

 ▲사고 당시 수송기 잔해와 주변을 수색하는 대원들 모습.   사진출처:오마이뉴스

 

일명 ‘봉황새 작전’이었습니다.  지금 같으면 해외토픽으로 전세계에 보도될 만한 엄청나게 큰 사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군사정부에 의해 작전명까지 바꾸면서 철저하게 위장,은폐된, 중앙언론에서 조차도 ‘공군비행기 훈련중 추락’등으로 단신처리된 사건입니다.


1982년

2월5일 오후3시경  C123 수송기 한라산 개미등 부근 추락.

2월6일 새벽  철저한 비밀속에 군, 수색시작 .

2월6일 오후1시경  공주사대 산악부 대원들의 신고로 사고지점 파악 및 발견 .

2월6일 밤  9시 뉴스 공군기 작전중 추락 사고 짧게 단신보도.

2월7일 새벽  아라초등학교에 본부를 둔 군수색대 극비리에 사고수습시작.

2월7일  시신을 마대자루에 담아 나르고 리어카로 이동, 나르기 힘든 일부시신은 그냥방치. 하루만에 현장수습종료, 수색대 철수.

2월8일  군당국,<대침투작전중 이상기류로 수송기추락 53명 사망, 사망자명단은 군의사정으로 발표 않고 유가족에게만 통보하고 사고원인조사하고 사후처리에 최선을 다할 것임> 이란 내용으로 공식발표. 봉황새작전을 대침투작전으로 바꿔 발표함.

2월9일 10시 동작동국립묘지 육군합동영결식 거행, 영결식은 눈물바다였지만 언론보도 전무(보도통제). 이후 사후처리에 만전을 기하겠다던 군당국은 사고 현장을 그대로 방치.

1982년5월 100일 위령제 유가족들 방치된 사고현장 방문, 마대에 쌓인채 방치된 시신보고 격분, 군당국에 위령제를 재차요구.  

                     ▲사고기와 동일 기종인 C123기와 국립묘지에서의 영결식 모습.     사진출처:오마이뉴스

 

  <날씨가 원체 안 좋아서 공군이 비양기 못 뜬다구 청와대에 보고했는디, 장세동이가 당시 경호실장 아녀. 전두환이한티 충성허느라 기냥 띄우라고 그랬다드만. 그러니께 그 비양기가 1982년 2월 5일 아침에 뜰 거였는디 날이 원체 안 좋아서 오후 1시 30분엔가 떴다지. 것두 다 장세동이가 호통해서 그랬다는겨.>오마이뉴스 취재기사중에서... 

 
   이후 유족들에게 당시 사고로 인한 법정 보상금 약 2500만원 정도씩 지급하고 대통령의 한마디의 사과도 없이 사건을 종결했습니다.

유족들은 이후 오랜기간 동안 군당국의 엉터리 조사와 사후처리에 항의하고, 정권이 바뀌면서 국회 및 청와대에 탄원서도 제출, 당시 대통령과 국방장관, 특전사령관, 공군참모총장등을 살인협의로 검찰에 고소하기도 하며 진상조사를 요구했지만, 진실규명은 커녕 많은 고통에 시달려야만 했습니다.

사고후 26년이 지난 지금 무성한 조릿대와 검은베레의 혼령이라고 여기는 까마귀의 울음소리만 사고현장을 지키고 있습니다.

지금이라도 억울하게 목숨을 잃은 장병들의 명예를 회복하고 유족들에게 위안이 될 수 있는 진실규명이 이루어 졌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관음사 코스 주차장옆 충성공원에 비치된 사고수송기에 대한 설명. 수송기 모형이 없는게 아쉬웠습니다. 

      ▲사고현장에서 수거한 추락한 C123기 잔해들. 

 

       ▲얼마나 참혹한 사고였는지는 잔해만 보고도 알 수 있을거 같습니다.

 

       ▲관음사코스 주차장옆 충성공원 표시석. 이름을 충성공원이라 할 정도면....

     ▲충성공원에 세워진 추모비. 꽃다운 청춘의 고귀한 생명을 잃은 영혼들~ 부디하늘에서 명복을 누리시길~

 

   <이제라도 사건의 진상이 밝혀질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며 "한국의 민주주의와 인권이 살아 있다는 것을 이제라도 보고 싶다"고 눈물을 글썽였다.> 오마이뉴스 취재기사중에서... 

 

※본 글의 주요내용과 일부사진은 2007년3월13일~2007년3월21일 총 4회에 걸친 오마이뉴스의 발굴탐사 기사에서 참고했음을 알려드립니다.

아래는 2007년 총4회에 걸친 오마이뉴스 보도자료 링크입니다. 클릭하시면 당시 기사를 자세히 보실 수 있습니다.


[발굴탐사①] 제주 봉황새작전의 비밀을 찾아서

전두환 경호 가다 몰사 당한 53명"발설마라" 극비 붙여진 끔찍한 진실

 


[발굴탐사②] 1982년 제주 '봉황새 작전'의 비밀을 찾아서

"장세동이 전두환에게 과잉충성..."'조사중'인 채로 25년 간 오리무중

 


[발굴탐사 ③] 제주 '봉황새 작전'의 비밀... 사건기록 단독 입수

전두환, 하루만에 '조종사 착각' 규정"인명은 재천, 모든 것 잊고 복귀하라"



[발굴탐사④] 1982년 제주 '봉황새 작전'의 비밀을 찾아서

박희도 사령관, 작전명 바꾸라 명령25년째 비문에도 '대침투 작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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