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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

장모님의 사위 사랑에 마음 설레는 이유

 장모님의 사위 사랑에 마음 설레는 이유

장모님! 저희들 왔습니다..
할머니~! 소리를 지르며 현관으로 들어서는 외손주들의 얼굴을 흐뭇한 표정을 지으시며 쳐다보시곤 곧장 안방으로 들어가시는 장모님. 어김없이 이부자리를 펴놓고 나오십니다. 먼저 두 분께 인사를 드리고는 안방으로 슬그머니 들어가 정갈스럽게 깔린 이부자리 밑으로 손을 넣어보니 전기매트에서 따뜻하게 열이 올라오기 시작합니다. 포근한 이불속에 몸을 맡기니 나도 모르게 깊은 잠에 빠져버립니다.

패턴이 들쭉날쭉한 회사생활을 하는 막내사위를 맞아 들인지도 벌써 12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결혼 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막내딸이 귀가가 늦어질 때면 늘 베란다 창문에서 기다리시곤 하셨습니다. 데이트시절 아내와의 데이트를 마치고 바래다 줄때면 언제나 아파트의 베란다에 몸을 숨기고 서 계셨다가 어떤놈(?)의 승용차에서 막내딸이 내리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슬그머니 안으로 들어가십니다.

데이트 시절, 첫인사를 드릴 때에만 하더라도 그리 달가워하진 않았습니다. 집으로 찾아온 막내딸의 남자친구라는 게 가만 보니, 키도 작고 까무잡잡하게 생겨 촌스럽기 그지없는데, 당신의 사랑하는 막내딸과 사귄답시고 인사를 하고 있으니 아마도 입장이 바뀌어 내가 장모님 입장이 됐어도 그리했을지 모릅니다. 그래도 자식이기는 부모 없다고 우여곡절 끝에 당신의 따님을 데리고 오는데 성공하였습니다.

결혼초기의 어느 날, 야근을 마치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처가에 갔을 때입니다. 눈을 좀 붙여야 되겠다 싶어 안방으로 들어가 베개 하나 달랑 받치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습니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흘렀을까 단잠에 개운한 몸을 일으키니 방바닥에 깔려 있어 썰렁했던 전기매트에는 따뜻한 온기가 흐르고 있었고 포근한 솜이불이 몸을 덮고 있었습니다. 이게 바로 몸으로 느낀 장모님의 사랑의 시작이었습니다.

1986년부터 시작된 직장생활, 일정한 기간을 정하여 야간근무와 주간근무를 오가는 근무패턴 때문에 항상 피로는 달고 살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까지 단 한번도 이 같은 패턴을 벗어난 적이 없었기에 간혹 처가에 놀러갈 때면 지친 몸을 뉘일 때가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몸을 뉘어 눈을 붙이라라 치면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시다가도 슬그머니 오시곤 솜이불을 조용히 덮어주고 행여나 깰까봐 방문까지도 살며시 닫아두고 나가시곤 합니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도 다 있습니다. 장모님의 방에서 눈을 붙인 시간이 단 10분이든, 아니면 몇 시간이든 신기할 정도로 몸이 개운하다는 것입니다. 집에서는 아무리 잠을 자도 풀리지 않던 만성적인 피로가 개운하게 풀린다는 것입니다. 오죽하면 "처갓댁이 풍수지리학 적으로 내 체질에 맞아서 그런가?" 할 정도로 신비롭기까지 합니다.

 

 누가 보면 사위라는 놈이 처가에 갈 때마다 잠만 자는 못된 놈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나름의 이유도 있습니다. 자나 깨나 조심조심, 야근을 해서 피곤하지는 않은지, 먼 길 운전해서 오느라 졸립지는 않은지, 어디 아픈 데는 없는지, 항상 막내 사위의 안부를 걱정하시며 사시다보니 당신 품에서 쉬어가는 사위를 보고 흐뭇해하시고 즐거워하시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새해 첫 날에도 빨갛게 익은 홍시감 세개를 접시에 넣고 꺼내 오십니다. 평소에도 말랑말랑한 유난히 좋아하는 사위가 오면 주려고 혼자만 아는 곳에 숨겨뒀던 감입니다. 잠깐 동안 인사를 드린 후 안방 문을 살며시 열어보니 오늘도 변함없이 포근한 이부자리가 곱게 펴져 있습니다. "들어가 눈 좀 붙여~" 라는 장모님의 말씀이 이어집니다. 이럴 때는 못이기는 척 들어가 줘야 좋아하십니다. 잠시 후에는 어김없이 따라 들어와 전기매트의 스위치를 켜 놓고 방문까지 조용히 닫아 놓으십니다.

장모님이 막내 사위에게 쏟아 주시는 정성에 보답을 못해주는 것 같아 언제나 마음이 쓰립니다. 나 혼자만의 생각일지 모르겠지만 당신에게도 장성하여 가정을 꾸린 아들이 둘씩이나 있고 오랜만에 온 가족이 모여 같이 있는 자리에서도 유난히 사위를 챙기시는 모습입니다. 

하지만 장모님께서 왜 이토록 유난스러울 정도로 사위를 챙기시는지에 대한 이유는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분명한 것은 낳아주신 어머니에게서는 가슴 저미는 그리움이 있는 반면, 장모님에서서는 언제나 변함없는 가슴뛰는 설레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도 집으로 돌아오는 승용차 뒷자리에선 장모님이 챙겨주신 김치냄새가 솔솔 풍겨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