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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라 산

한라산의 석굴암, 단풍 물든 이색 암자를 찾아가다

 석굴암, 경주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난 주말 아들을 불러 세웠습니다. 조금 있으면 6학년이 될 녀석인데, 가을을 타는지 분위기 쇄신도 할 겸, 가까운 곳으로 단풍 구경이나 다녀와야겠습니다.

"아들~! 단풍 구경 같이 가자~"

"어딜요?"

"웅~석굴암~!"

"석굴암요? 그럼 경주에 가자구요?"

"아니, 경주보다 더 좋은 곳이 있어.."

 

 한라산에 있는 석굴암자로 가기 위해서는 이렇게 멋드러진 길을 통과해야만 합니다. 1km 가까이 이어진 도로사이에는 편백림의 울창한 숲이 우거져 있어 더한 운치를 만들어 냅니다.
  

제주도의 한라산 천연보호구역 안에  석굴암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제주토박이들 중에서도 제주시에 사는 일부 시민들만이 단골처럼 찾아가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지금쯤 가을빛깔이 곱게 물들었으면 좋으련만, 뭐 그렇지 않더라도 잠시 심신을 달래고 정취를 만끽하기에는 이만한 곳도 없지 싶습니다.

 

 석굴암으로 가는 길의 초입. 비록 1.5km에 왕복의 소요시간이 1시간30분에 불과하다고 하지만 산행 초보자에겐 상당히 버거운 코스입니다. 암자에 필요한 물자들이 탐방로 초입에 수북이 쌓여있습니다. 암자로 향하는 사람들에게 거들어 달라는 뜻입니다. 카메라 렌즈와 물병이 들어 있는 배낭을 아들녀석에게 맡기고 짐 하나를 등에 짊어 맸습니다.


깎아지른 기암절벽중간에 암자를 만들어 부처를 모셔놓고 불심을 달래는 곳 석굴암, 너무나도 유명한 경주의 석굴암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한라산의 깊은 계곡 속, 새소리와 울창한 숲 사이로 스쳐가는 바람소리가 도심 속 찌든 때를 씻어주기엔 더없이 안성마춤인 곳입니다.

 

 

한라산의 해발 900m, 아흔아홉 골 골짜기, 가을이 무르익기에는 조금은 이른 시기인 듯, 숨을 크게 들이쉬니 여름의 청량한 기운이 온몸으로 엄습합니다. 숲의 대부분이 신록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지만 높은 곳으로 오를수록 화려한 빛깔로 갈아입는 가을단풍도 간간히 눈에 띱니다.

 

 

이곳은 일명 '골머리'라고도 불립니다. 골짜기의 머리라는 의미입니다. 한라산 아흔아홉골이 시작되는 곳인데, 이곳 석굴암과 인근에 있는 천왕사 일대를 일컫습니다. 골머리 오름과 위쪽에 위치한 금봉곡 주변으로 만들어진 탐방로, 그리고 탐방로 끝 기암절벽에 들어서 있는 석굴암 암자, 이 1.5km의 탐방로를 사람들은 석굴암 가는 길이라고 합니다.

 

 촘촘히 이어진 탐방로 나무계단 위에는 가을색이 완연합니다.

 

 아직은 색이 덜찬 가을단풍입니다.

 

 

 

 때로는 이렇게 급경사도 올라야 합니다. 초등생 아들은 저만치 앞서 가네요.

 

 

 하늘을 찌를듯한 적송의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이곳에는 적송외에도 단풍나무,  상수리나무, 조릿대가 많이 가생하고 있습니다.

 

 

 

 

 탐방로 중 가장 높은 지대입니다. 이곳에는 사람들이 쉬어갈 수 있도록 테크시설과 나무의자들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이곳에서 부터 다시 계곡 쪽을 향하여 5분여를 내려가면 석굴암 암자가 눈에 들어 옵니다. 

 

 하늘을 찌를듯 웅장한 기암괴석입니다. 처음보는 사람들은 흠칫 놀래기도 합니다.

 

 어느덧, 계곡 깊은 곳에 자리한 석굴암 암자의 모습이 나뭇가지들 사이로 모습을 드러냅니다.

 

 

 

 

 

 정숙을 요하는 표지판이 눈에 띱니다. 이곳에는 세상살이 답답함을 조금이라도 덜어보고자 소망을 담고, 특히 시험을 앞둔 이들이 합격의 간절함을 기원하는 기도객과 탐방객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고 있는 곳입니다.

 한라산에만 오면 까마귀가 영험한 동물처럼보여집니다. 암자의 앞을 지키고 앉아있는 까마귀 한마리
 

 석굴암 암자 앞에는 이처럼 차를 마실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습니다. 바로 옆에서 흐르는 계곡물을 떠다가 휴대용 렌지에 끓인 후 차를 마신 다음 용기는 깨끗이 씻어서 올려 놓으면 됩니다. 따로 돈을 받지는 않습니다. 알고 보면 이곳이야 말로 요즘 유행하는 무인카페의 원조입니다.

 

 기암괴석의 굴속에 만들어진 암자, 지붕과 창은 비바람을 피하려면 어쩔수 없는 시설입니다.

 

 암자에는 말소리, 숨소리 조차도 크게 내지 말라는 안내문이 걸려 있습니다. 기도를 드리는 사람들에게 누가 될까 카메라의 셔터소리도 조심스럽습니다. 결국 입구에서의 한컷 외에는 더 이상 찍을 수 없었습니다.   

 

 암자뒤로 기암괴석에 쓰여있는 거대한 글씨가 참 인상적입니다.
 

이곳 해발900m상에 위치한 아흔아홉 골의 암자군은 예로부터 소원성취 기도암자로 세간에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석굴암은 1947년 월암당 '강동은' 스님에 의해 창건되었으며 도량의 터를 찾기 위해서 스님께서는 아흔아홉 골내 선녀폭포 위쪽에 자리한 궤에서 기도도량 찾기 100일기도를 드린 후 작은새의 인도를 받아 지금의 석굴암 터를 정해서 지었다는 일화가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


아흔아홉 골에 전해져 내려오는 유래를 살펴보면 상당히 흥미롭습니다. 아주 먼 옛날에는 한라산에 100개의 골짜기가 있었다고 합니다. 이곳에는 사자와 호랑이 등 맹수들이 살고 있었고 백성들이 맹수들에게 괴롭힘을 당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중국의 한 스님이 그 맹수들을 하나의 골짜기에 몰아넣고는 그 골짜기를 없애 버렸다는 것입니다. 그 후로 제주도에는 맹수가 사라지고 큰 인물도 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100개에서 하나가 모자란 아흔아홉 개의 골짜기, 즉 아흔아홉 골이 되었다고 합니다.

 

 내려오는 길에 만난 백마 한마리, 숲속 백마의 모습이 얼핏 태고의 모습을 보는듯 신비스럽고 이국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