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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름

제주 오름 트레킹

서귀포시-영주오름.말미오름


◇ 영주오름 꼭대기를 오르다 바라본 일명 ‘오름의 왕국’ 지역. 고경완씨는 이게 바로 제주의

본래 색깔이라고 말했다.

 

오름이 갖는 은유와 상징

오름 곁에 태어나서 오름에서 일하고 오름에 묻힌다.’
제주사람들은 오름에 대해 묻는 뭍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더 이상의 질문은 무의미하다. 오름이 제주사람들에게 어떤 존재와 관계인지 말의 행간에 함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오름은 제주사람들에게 요람이자 무덤이다.
아니, 오름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 솟은 섬사람들의 상징 부호일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오름의 둥근 모양을 보고 있으면 만상이 교차한다. 일정 거리를 두고 보는 오름은 풍만하지만 아래로 살짝 처진 아녀자의 젖가슴 같고, 가까이 다가가 밑에서 올려보노라면 팽팽한 긴장감과 탄력이 넘치는 처녀의 가슴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오름의 곡선 또한 옆으로 비스듬하게 누운 여인네의 허리선 같아서 잠시 숨이 멎기도 한다. 바람이 불어 작은 풀들과 꽃들이 흔들리면 돌아누워 흐느끼는 여인의 뒷모습으로 변한다. 어디 이뿐이랴.
오름 꼭대기에서 내려다보는 펑퍼짐한 분화구는 어머니의 자궁을 닮아 그 속에 들어앉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이런 심정은 누구나 다 같은 것인지, 분화구 한복판에 무덤이 들어서기도 한다.
제주오름 기행의 선구자적인 인물로 꼽히는 고 김종철(1927~1995)씨는 “한라산을 비롯한 오름들은 제주신화의 신들의 고향이다. 때로는 항쟁의 거점이 되었고, 외침 때의 통신망 구실을 했다…멀리서는 그저 비슷비슷해 보이던 것들도 어느 하나 그 모양새, 차림새가 저만의 것 아닌 것이 없으며, 그 빚어내는 빛깔이며 바람결의 감촉마저 다르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오름을 탐방하는 발걸음은 어찌 보면 생사를 동시에 순례하는 여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제주에는 모두 360여 개의 크고 작은 오름이 있으니, 이는 곧 360여 개의 삶과 죽음이 존재한다는 의미이리라. 소와 말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는 풍경 한쪽엔 어김없이 죽은 자가 오름을 베개 삼아 누워 있으니 삶과 죽음의 대조가 이만큼 선명한 공간도 드물 것이다. 세상에 똑같은 삶과 죽음이 없듯 제주의 오름들도 저마다 높이와 모양이 다르다.
이렇게 다르다는 것은 한편으론 제각기 질서를 구축하고 있다는 뜻이리라. 높음과 낮음, 넓음과 좁음, 펑퍼짐함과 뾰족함, 양지와 그늘, 흙과 돌, 소란함과 적요함, 흔들림과 흔들리지 않음, 눈물과 웃음, 희망과 절망…. 이렇듯 서로 다르고 혹 반대되는 것들에게도 나름대로의 질서가 있어 그것 자체가 하나의 작은 세계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오름의 왕국’을 한눈에 보는 영주오름

 

이번 오름기행은 서귀포시 표선면 성읍리 영주오름(326.4m)과  성산읍 시흥리 말미오름(145.9m)으로 정했다. 영주오름은 고경완 (주)트렉제주 사장이, 말미오름은 김영홍씨가 각각 추천을 했다.
뭍사람들에게 제주오름하면 용눈이오름과 다랑쉬오름이 유명하지만, 잘 알려지지 않고 색다른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오름을 일부러 찾은 것이다.
영주오름은 제주 동쪽지역을 일컫는 일명 ‘오름의 왕국’ 변방에 위치하고 있다.
영주오름은 신선이 살아 신령스럽다 하여 영모루로 불리다가 한라산의 옛 이름인 영주산(瀛洲山)으로 표기하고 있다.

 

◇ 영주오름에서 만난 어느 무덤에 서있는 동자석.

 

완만한 언덕을 오르면서 고경완씨가 오름의 형태와 종류에 대해 이런저런 설명을 해준다. 그의 말을 들으니 ‘오름이 서로 달라봐야 얼마나 다를까’ 하는 생각이 얼마나 무지의 소산인지 깨닫고 얼굴이 순간 달아오른다.
말굽형의 영주오름은 초식동물의 눈망울을 닮은 듯 한없이 순해 보인다. 이런 순한 오름은 길이 따로 없다. 발길 닿는 대로 천천히 오르며 주변 풍광을 감상하면 된다. 육지의 험한 산에선 길이 사람의 발걸음을 통제하고 간섭하지만, 영주오름에선 발걸음이 길에 채이지 않는다. 길에 끌려 다니지 않는 발걸음은 이래서 자유롭다.
오름 중간에서 편안히 누워있는 무덤 몇 기를 만났다. 스무 살 적 어느 봄날, 양지 바른 무덤에 핀 할미꽃을 보고 마음이 처연해져 홀로 무덤가에서 막걸리를 마셨던 기억이 떠오른다. 사람들은 가다가 무덤을 만나면 옆으로 비켜나지만, 이승과의 경계에 쌓인 돌담을 드나드는 바람이나 햇살은 망자의 오랜 동무 같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무덤을 보는 내게 고경완씨가 제주에는 ‘3담’이 있다고 알려준다.
묘지 둘레를 쌓은 돌은 산담, 밭 둘레는 밭담, 집 둘레는 집담이란다. 산담에는 반드시 신이 출입할 수 있도록 작은 구멍을 내는데, 이를 신문(神門)이라 부른다고 귀띔해준다.
망자가 살아생전 누렸던 부와 권력의 정도에 따라 산담의 모양과 규모가 정해진다고 하니 이 또한 세월 앞에선 한낱 돌무더기에 지나지 않을 터이다.
“이것이 제주의 본래 색깔입니다.”
고경완씨가 등산용 스틱 끝으로 가리킨 들판에는 누런 초원과 붉은 흙, 푸른 밭과 상록수, 그리고 검은 돌들이 절묘한 배색을 이루며 바다를 향해 뻗어있다. 온통 푸른색으로 뒤덮인 계절은 강렬하지만 여운이 짧은 반면, 늦가을이나 겨울의 차분한 풍광은 잔상이 오래 남는다.
사물이든 사람이든 잔상이 오래도록 지속되어야 마음속에 하나의 풍경으로 자리 잡지 않은가.
중심을 제대로 보려면 주변에 있어야 하는 법. 오름 꼭대기에 올라서자 저 멀리 ‘오름의 왕국’이 한눈에 잡힌다. 쓸쓸한 들판에 올망졸망 몰려있는 빛바랜 오름들은 몽환적이기도 하고 또 비현실적인 그림처럼 느껴진다.
바람 잔잔한 날에는 온종일 자리 깔고 앉아다 누웠다 하면서 저 ‘오름의 왕국’으로 가는 상상놀이를 했으면 좋겠다.
정상에서 조그만 내려오면 이 오름의 뚜렷한 말굽 형태를 볼 수 있다.
말굽이 감싸고 있는 안쪽의 중심부 은밀한 부위에 어느 집 후손이 모셨는지 어김없이 무덤이 주인 노릇을 하고 있다. 누가 봐도 탐낼 만한 자리다.
기수련을 하는 사람 중에는 오름의 분화구 한복판에서 정좌를 하고 있으면 좋은 기가 온몸에 퍼지는 것을 느낀다고 말하는 이도 있으니 오름은 산사람이든 죽은 사람이든 가리지 않고 그 품을 넉넉히 내주고 있다.

 

성산포 바다가 보이는 말미오름

약 1시간 가량 영주오름을 둘러보고 이동한 곳은 말미오름.
이중분화구 형태를 지닌 이 오름은 말을 많이 방목한 곳이라 하여 몰미·몰메·말미오름이라고 하며, 몸집이 큰 산이란 뜻에서 두산봉(斗山峯)으로도 불린다.
이 오름을 추천한 김영홍씨는 얼마 전에 서울생활을 정리하고 제주로 내려왔다고 한다.
말수가 적은 그의 표정과 말투에 대도시 생활에 염증을 느껴 모든 걸 정리하고 홀가분한 삶을 선택한 듯한 기색이 역력했다. 고향이 서귀포인 그는 초등학교 때 말미오름으로 소풍을 자주 가곤 했다고 한다.
유년의 추억이 담긴 장소를 가면 아득하다고 할까. 미처 생각지 못한 오래된 기억의 편린들이 아득한 시간의 경계에서 하나하나 되살아나 몸과 마음이 현실감을 상실하는 느낌이랄까.
말미오름 꼭대기로 가는 길은 만곡의 초원을 이룬다. 이곳이 오름인지 평원인지 헷갈릴 정도로 부드럽다. 이런 풍성한 초원지대는 낯선 곳에 오면 본능적으로 갖는 경계심을 일거에 해제시켜 버린다.
하지만 오름의 남동면에서 동면과 북동면에 이르는 지역은 길이 수백m에 높이 10여m의 절벽을 이뤄 만곡과 수직의 두 모습을 동시에 보여준다.
김영홍씨는 탄성을 지르는 취재팀에게 “말미오름의 잔디는 품질이 워낙 좋아 예전에 일본에서 많이 사갔다”고 알려준다. 뗏장 하나만 떼서 집 마당에 심어놓으면 금방 무성하게 자라 마당을 덮는다고 하니 그 억센 생명력은 제주사람을 닮은 듯하다.
하지만 어릴 때 축구를 하며 뛰어놀 정도로 넓었던 잔디밭이 지금은 밭으로 변해 있어 그는 아쉬운 눈길을 자꾸 던진다.
말미오름 꼭대기에 서면 성산포 일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섭지코지, 일출봉, 우도가 손에 잡힐 듯 가깝고, 뒤쪽으로는 한라산 자락이 아스라이 펼쳐져 있으며, 오늘처럼 날씨가 좋을 경우 북쪽으로는 수평선 너머로 완도의 섬이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이 오름을 아는 사람은 번잡한 일출봉 대신 이곳에서 호젓한 해돋이를 감상한다고 한다.
말미오름은 풍경뿐만 아니라 학술적인 가치 또한 높다.
남동면에서 동면과 북동면에 이르는절벽은 암석 층상의 배열상태를 관찰할 수 있는 층리를 이루고 있어 지질학의 표본이 되며, 분화구 안에 또 하나의 새끼오름이 솟아있는 이중분화구 형태를 갖춰 기생화산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되기 때문이다.
한라산과 오름에서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오름에 대한 느낌을 물었는데 “편안하고 소박하다”는 말을 가장 많이 들었다. 이들의 말처럼 오름의 매력은 편안함과 소박함이지 않을까. 짧은 겨울 해가 발길을 재촉한다. 하루에 맛보기로 오름 두 개를 오르고 제주오름에 대해 말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360여 개나 되는 오름들을 몇 년에 걸쳐 찾아다니는 중원의 고수들도 말을 아끼는 판인데, 초보 ‘오름 나그네’가 주마간산의 기행에서 무엇을 얼마나 느끼고 얻었겠냐마는 단 한 가지를 꼽자면 오름은 애정과 사색을 요구하는 삶의 은유와 상징임을 깨달았다고 말할 때 기꺼이 오름을 안내해준 고경완, 김영홍씨의 노고에 그나마 보답하는 길은 아닐는지.

 ◇ 오름은 제주인의 삶의 터전이자 무덤이기도 하다. 묘지 둘레를 쌓은 산담에는 신이

드나들 수 있는 작은 구멍인 신문(神門)이 있다.

 

INFORMATION
제주 오름


오름은 제주에 산재해 있는 기생화산구(寄生火山丘)들을 말한다.
오름의 어원은 산 또는 봉우리를 뜻하는 제주 사투리로 한라산의 산록에서 만들어진 개개의 분화구를 갖고 있는 소화산체를 의미한다. 다시 말해 분화구를 갖고 있고, 내용물이 화산쇄설물로 이루어져 있으며, 화산구의 형태를 갖춘 것을 일컫는다. 오름은 제주사람의 생활 터전의 하나로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최근에는 제주도민과 관광객들에게 높은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으며, 수려한 자연 경관뿐만 아니라 생태계의 보고로 평가받고 있어 귀중한 학술 연구 대상이기도 하다.
제주도가 펴낸 <제주의 오름>에 따르면 제주 오름의 전체 숫자는 368개로 나와 있다.
제주 오름은 성인(成因)별, 형태별, 특성별로 구분될 만큼 제각기 다양한 형태와 특성을 지녔다. 이중 일반인이 쉽게 육안으로도 쉽게 관찰할 수 있는 형태별로는 크게 말굽형·원추형·원형·복합형(이중분화구) 등 네 가지로 나뉜다.
오름 분포 현황을 보면 제주시에 59개를 비롯해 서귀포시 37개, 옛북제주군에 151개에 이어 옛남제주군에 121개가 있다. 특히 한라산을 중심으로 동쪽과 서쪽지역에 많이 몰려 있다. 표고별 분포 현황은 해발 200m 이하 143개를 비롯해 해발 200~600m가 149개, 600m대에서 한라산국립공원 사이에 30개, 한라산국립공원 내에 46개가 있다.
높고 험한 오름이 아닌 완만한 오름을 탐방하려면 배낭을 멘 가벼운 등산복 차림이 좋다. 목장의 철조망이나 문을 통과할 때는 반드시 원상태로 돌려놓아야 한다. 잔디 보호를 위해 가급적 길이 나있는 곳으로 다녀야 하며, 웬만한 오름은 정상에 산불감시초소가 있으므로 쓰레기 투기와 흡연은 절대 금물이다.
오름을 탐방할 경우 효율적인 시간과 정확한 위치, 그리고 오름에 관한 설명 등을 고려한다면 오름 안내 전문업체를 이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오름 안내 전문업체 (주)트렉제주
소규모로 움직이는 에코 트레킹 방식


(주)트렉제주(사장 고경완·www.trekjeju.co.kr)는 제주 오름들을 전문으로 안내하는 업체이다.
잘 알려지지 않은 오름과 그 주변에 모여 사는 제주사람들의 사라져가는 모습, 그리고 그에 얽힌 옛 이야기들을 자연과 함께 하는 트레킹 형태로 직접 체험하는 생태여행 프로그램을 선보이고 있다.
이 회사는 여행팀을 5~12명 내외의 소규모 인원으로 운영하는 것이 특징. 때문에 가족 같은 분위기 속에서 제주의 구석구석을 원활하게 돌아다닐 수 있다.
소규모이기 때문에 유연하게 일정을 조정할 수 있다는 장점도 빼놓을 수 없다. 이 회사는 여행상품을 여행자가 직접 걷고 체험하며 환경을 보호하는 에코 트레킹 방식이라고 강조한다. 외국인들도 트렉제주를 자주 이용한다.
제주가 고향인 고경완 사장은 성균관대학을 졸업하고 삼성에 근무하다가 더 늦기 전에 고향에서 뿌리를 내리겠다는 결심을 하고 1992년에 제주에 정착한 사람이다.
이때부터 2003년까지 제주 전역의 오름들을 답사한 것을 비롯해 국내외 유명 산들을 다니면서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
(주)트렉제주 064-759-9300

출처 : 월간[마운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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