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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라 산

한라산의 시로미

 

  제주도민들에게 한라산에서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식물에 대해 묻는다면 대부분 시로미를 꼽는다. 그리고는 옛날 진시황에게 불로초를 구해 오겠다며 동남동녀 500명을 데리고 떠난 서불(서복)이 제주도 한라산에서 불로초라며 캐 간 것이 시로미였다고 덧붙인다.

 사람이 먹으면 늙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다는 불로 불사의 신비한 영약으로 알려진 "시로미". 시로미는 우리나라에서는 한라산과 백두산 정상에서만 자라는 희귀한 식물이다. 한라산 해발 1400고지 이상의 지역에서만 자라는 시로미는 돌매화나무와 더불어 가장 작은 나무다. 10∼20cm 내외의 상록 소관목으로 가지는 바르게 뻗으며 줄기는 땅 위에 길게 원줄기에서 뻗어 나가고 큰 군락 형태를 이룬다.

 지금은 먼 옛날 얘기처럼 들리지만 예전에는 등산객들이 8월이면 검게 익는 시로미 열매를 따먹기도 했었고 술을 담근다거나 차를 만들어 마시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이처럼 귀한 식물자원인 시로미가 최근에는 그 생존에 있어서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는 것이 식물학자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갈수록 그 수효나 서식면적이 줄어들고 있다는 조사가 속속 발표되고 있기 때문이다.

 시로미가 줄어들고 있는 원인에 대해 지구의 온난화현상을 꼽고 있는데 온난화와 함께 지적되는 것이 사람들의 자연환경에 대한 과잉보호 때문이라면 쉽게 믿기지 않을 것이다.

 다름 아닌 한라산을 보호한다는 이유로 수백년에 걸쳐 이루어져 왔던 소와 말 등 가축의 방목을 금지시킨 조치가 결과적으로 시로미의 서식환경을 악화시키게 됐다는 것이다. 20여년 전까지만 해도 방목중인 소와 말이 제주조릿대를 뜯어먹어 조릿대의 급격한 증가를 막았었다. 하지만 방목이 금지되면서 제주조릿대가 빠르게 번식해 그 결과 생존경쟁에서 시로미가 점차 도태되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실제로 한라산국립공원에서 20여년간 근무했던 청원경찰들의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말이 지나간 자리에는 제주조릿대의 번식이 상당히 더딘 모습을 보이기 때문에 지금이라도 일정 면적에서 가축을 풀어놓아 조릿대의 번식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해보면 쉽게 그 결과를 알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학자들에 따라서는 조릿대의 급속한 증가에 따른 시로미 개체수의 감소가 등산객들의 답압에 의한 피해보다도 훨씬 더 심각하다고 말한다. 뿌리로 번식하는 제주조릿대는 땅속을 뿌리로 빽빽하게 채워 다른 식물의 씨가 떨어져도 발아할 틈을 주지 않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때가 되면 제주조릿대는 꽃을 피운 후 말라죽기 때문에 크게 우려할 바가 아니"라고 했었지만 마냥 조릿대가 꽃을 피우기만을 기다릴 수도 없는 노릇이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이와 함께 한라산에서 뛰노는 노루의 증가도 시로미의 성장을 막는 요인이라고 지적한다. 시로미는 겨울철에도 푸른 잎을 간직하고 있는데 눈이 쌓인 산에서 노루들이 시로미 잎을 먹어치운다는 것이다.

 환경보호라는 미명하에 제대로 된 조사 없이 가축의 방목을 금지시킨 조치와 함께 노루의 과잉번식이 도리어 시로미를 비롯한 고산식물을 훼손시키는 결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지나친 환경보호에 따른 문제점을 시로미가 직설적으로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는 것이다.

 이제는 더 이상 늦기 전에 방목금지의 따른 득과 실이 밝혀져야 한다. 만약에 제주조릿대의 급속한 증가가 소와 말의 방목을 금지시킨 결과이고 이것이 시로미를 비롯한 한라산의 특산식물인 두메대극, 제주달구지풀 등이 사라지는 원인이 된다면 대책마련이 시급하다. 이는 지금 수십억원의 예산을 투입하며 벌이는 훼손지 복구사업보다도 더욱 중요한 일이며 선결돼야 할 과제이다.

 인간들의 얄팍한 지식으로 수백년간 이어져온 자연을 거스르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행위인가를 시로미와 제주조릿대를 통해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시로미는 우리나라에서는 한 종으로써 시로미속 시로미과를 만들고 있다. 이러한 식물을 가리켜 모노타입이라고 부르는데 모노타입은 그 종이 없어지면 종 자체가 없어져 버린다.

 16세기에 유럽 열강이 전 세계로 그 영역을 확장할 때 모리셔스라는 섬에는 도도라는 날지 못하는 새가 살고 있었다. 유럽인들이 모리셔스 섬에 상륙한 이후 도도는 멸종의 위기에 내몰리게 됐고 결국 17세기에 이르러 도도는 지구상에서 영영 사라지는 결과를 낳았던 역사가 있다.

 멸종 동물의 상징인 도도는 이제 전설 속의 새가 돼 버렸다. 더 이상 지구상에서 도도와 같은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란다.

 

시로미 (Empetrum nigrum var. japonicum)

무환자나무목 시로미과의 상록소관목.

높이 10∼20㎝. 줄기는 60∼90㎝로 길게 땅을 기면서 분지하고 큰 군락(群落)을 형성한다. 잎은 혁질(革質)이고 줄모양이며 어긋나고, 길이 4∼6㎜로 작으며 가장자리가 뒤로 젖혀진다. 자웅이주이고 6월에 자흑색의 작은 꽃이 잎겨드랑이에서 핀다. 꽃잎과 꽃받침조각은 3장씩이다. 수꽃에는 수술이 3개 있고 암꽃에는 암술이 1개 있다. 열매는 둥근모양으로 지름 6∼10㎜의 핵과(核果)이며 9월 무렵 자흑색으로 익는다. 달고 신맛이 있어 식용되며 잼이나 과실주를 만드는 데 쓰인다. 한국(제주도·북부 지방)·일본·중국·동시베리아에 분포한다.

 

글출처 : 강정효와 함께하는 한라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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