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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라 산

한라산 등반로 변천사

   한라산 백록담에 오르는 등반로는 어떤 변천과정을 거쳤을까. 조선시대 제주목사나 판관등이 한라산을 오른 경우는 많지만 기록을 남긴 경우는 채 10건도 안 된다. 많이 올랐다는 것은 이약동목사 이전에는 한라산 백록담 북쪽의 제단에서 한라산신제를 지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오르는 경우도 많았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예전에는 어느 코스로 백록담에 올랐을까. 한라산 등반기중 가장 오래된 자료라 할 수 있는 1577년 임제의 남명소승에는 제주목 서문을 출발하여 도근천상류인 광령계곡을 지나 영실의 존자암이 등반전진기지가 된다. 이어 영실코스의 구 등반로인 남쪽절벽을 올라 백록담 정상에 도착한 후 하산 때는 백록담남벽코스를 이용해 효돈천 상류에 위치한 두타사에서 1박한 후 돈내코 코스인 서귀포시 영천동방면으로 내렸다고 기록돼 있다.

 존자암코스를 이용한 경우는 1601년의 김상헌어사와 1609년의 김치판관 등이 있다. 김상헌어사는 백록담에서 한라산신제를 그리고 김치판관은 백록담의 북벽으로 하산한 것이 차이점이다.

 이형상 목사는 1702년에 백록담에 올랐는데 기록에 의하면 최초의 당일산행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한라산 전체적인 개관에 대해서는 잘 나와 있으나 구체적인 등반코스에 그 지역을 유추해 볼 수 있는 기록이 없어 정확한 코스는 알 수 없다.

 이어 1800년대 들어서는 관음사코스가 자주 이용되는데 1841년 이원조목사의 경우 방선문동쪽마을인 죽성촌에서 출발하여 백록담 북벽으로 정상에 오른 후 하산은 남벽을 이용 선작지왓을 지나 영실로 내렸다.

 이어 최익현은 남문을 출발 방선문 죽성마을 탐라계곡을 거쳐 정상에 오른 후 남벽으로 하산 영실로 내려왔다.

 일제시대인 1937년 한라산에 오른 이은상은 산천단을 출발점으로 삼는데 관음사-한천-개미목-삼각봉-용진각을 지나는 오늘날의 관음사코스를 이용한다. 하산은 남벽-방아오름-모새밭(지금의 선작지왓)을 거쳐 영실 어리목 노로오름으로 이어지는 지금의 1100도로 위쪽 사면을 따라 시내까지 내려왔다.

 해방을 거쳐 4·3이후인 1953년 산악인이자 식물학자인 부종휴 선생은 한라산을 오르면서 산천단 관음사(1박)-탐라계곡-개미등-삼각봉-용진각(1박)-왕관릉-정상-남벽-영실-존자암지(1박)를 거쳐 서귀포시 하원동으로 내려 오늘날의 등반로인 관음사 영실코스와 일치한다.

 이어 1960년대 제주시와 서귀를 있는 횡단도로인 5·16도로와 1100도로가 생기면서 어리목코스와 성판악코스가 개설된다. 70년대 이후로 80년대 후반까지는 거의 대부분의 등반객들이 어리목코스와 영실코스를 이용하여 백록담에 올랐다.

 당시는 어리목과 영실을 출발하여 윗세오름대피소에 도착한후 백록담 서북벽코스를 거쳐 정상에 올랐는데 1986년 서북벽 등산로가 낙석 붕괴 등의 이유로 폐쇄된 후에는 새롭게 개발된 남벽을 이용하게 된다.

 하지만 남벽등반로의 개설은 백록담 사면의 급격한 훼손을 가져오는 결과를 초래, 1993년 4월에는 이 또한 폐쇄되고 만다. 오늘날까지 한라산 국립공원지역에서의 환경훼손을 이야기할 때 최대의 실패작으로 꼽히는 것이 남벽 등산로 개설이라고 관계자들은 지적하고 있다.

 지금도 엄청난 예산과 인력을 투입해 복구공사가 한창이지만 한번 파괴된 자연은 쉽게 제 모습을 찾지 못하고 있다. 어쩌면 영영 예전의 모습을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자연을 거스를 때 얼마나 큰 대가를 치러야 하는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한라산에서의 본격적인 등산로 개설은 1958년 이후라고 원로산악인들은 회고한다. 초창기 제주도산악연맹회장을 역임했던 안흥찬씨는 당시 제주북교 교사로 근무했던 이기형 김종철씨 등과 더불어 57년부터 산행에 나섰다고 말한다.

 안흥찬전회장은 당시에 제주도 학도호국단 체육대회에 출전하는 신성여중의 육상코치를, 김종철씨는 배구코치를 맡았었는데 신성여중 학생들이 단체로 산행에 나선 적이 있었는데 이것이 제주도 최초의 단체산행이라고 덧붙인다.

 58년부터 본격적인 산행이 이루어졌다고는 하지만 대부분이 등산로에 표식기를 설치하는 개척단계였고 간혹 조난자가 발생하면 구조를 하러 산으로 향했던 것이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또한 대피소가 없던 시절이라 한라산 중턱 곳곳에 있는 표고재배 관리사가 대피소 역할을 했었는데 관음사 위쪽에 위치했던 박태훈씨(남양문화방송사장 역임)의 표고밭을 즐겨 이용했다고 말한다.

 50년대 후반부터 개척된 등산로중 현재 폐쇄된 등산코스는 탐라계곡 동쪽으로 오르는 학사코스와 서귀포 방면으로 오르내리는 돈내코코스, 남성대코스가 있고 산악인들만 이용했던 코스로 물장올을 출발해 태역장올과 어후오름 사이를 거쳐 동릉 정상에 오르는 물장올코스와 골머리오름의 석굴암에서 작은두레왓 큰두레왓 장구목을 거쳐 서북벽으로 오르는 석굴암코스 등이 있었다.

 

출처 : 강정효와 함께하는 한라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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